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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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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9회 작성일 23-12-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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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현대판 장보고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해운은 국력…태풍 피하려면 뒤집혀, 파도 타며 정면승부해야

  • 전지현,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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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동원그룹 회장(81)은 하루 6~7㎞를 걷는다. 1963년 27세에 참치잡이 원양어선 선장이 된 후부터 그는 강해져야 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면 선원들은 선장의 얼굴만 보기 때문이다. 1969년 동원산업을 설립해 매출 9조원대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키우기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김 회장은 "바다는 변명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항해나 경영이나 약하면 죽는다. 억지로 살려놓아도 결국 좀비 기업이 된다"고 말했다. '캡틴 김'으로 망망대해를 누빈 그는 거친 바다에서 경영을 배워 육지에서 사업을 일궜다. 최근 파란만장한 인생과 기업 경영사를 담은 평전 '파도를 헤쳐온 삶과 사업 이야기'(공병호 지음)가 출간됐다. 가난한 농가의 11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기업가로 성공하기까지 그의 땀과 눈물, 열정이 800페이지에 녹아 있다. '경영학 교과서'로 평가받는 이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 회장을 만났다. 서울 양재천에서 걸으면서 시작된 인터뷰는 건너편 동원그룹 본사 회장실과 인근 식당으로 5시간 동안 이어졌다.

―평전을 낸 계기는 무엇인지요.

▷자서전은 자기 자랑이라고 생각해 일절 안 썼어요. 하지만 나이도 들고 험난했던 시절을 살아온 기록을 남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먹고살기 어려워 산업전선에 뛰어든 기록이죠. 공병호 경제학 박사가 자료를 조사해 사실 위주로 썼어요. 나도 까맣게 잊은 것까지 썼더군요.

―책을 읽어보니 승승장구만 하신 게 아니라 실패도 많았더군요. 격변하는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간직한 인생철학은 뭔가요.

▷젊어서 바다생활하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외국에 나가기 힘들었던 시절에 배를 타고 나가 견문이 생겼죠. 1960년대 다른 나라 조상들은 훌륭한 유산을 많이 남겼지만 우리는 쓰러져 가는 초가집밖에 없었어요.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가진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바다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못할 게 없다는 생각도 들고 덤으로 살았으니 떳떳하게 살아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죠. 죽다가 살아나면 생각이 달라져요.

◆ 바다경영

1958년 남태평양 사모아로 향하는 참치잡이 어선 '지남호' 선원으로 시작한 그는 7년간 배를 타고 사업을 하면서 지구를 200바퀴 돌았다. 뚝심으로 드넓은 바다를 개척하면서 굴지 그룹을 키워 '현대판 장보고'로 불린다.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하고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고 생각한 그는 수산업에서 출발해 종합식품회사와 금융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새로운 사업은 리스크가 큰데 사업 확장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자연물을 채취하는 1차 산업 기업이 어느 정도 크면 엄청난 질투를 받게 돼요. 자원을 캐 나가니까요. 그럴 때는 다른 데서 '씨름판'을 벌여야죠. 제주 광어 양식업(1988~2002년)도 우리가 처음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사업이 큰 후에는 접었어요.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작은 배들이 몰려 있는 연안에서는 어업을 하지 않았고 제가 발견한 어장이라도 다른 배들이 들어오면 다른 어장으로 갔지요. 수산업으로 시작했지만 기회가 되면 2차(제조)·3차(금융)산업에 진출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1982년 원양어선 한 척값(71억2000만원)에 한신증권(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화제가 됐습니다.

▷강진농업고와 부산수산대를 나와 경영을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1981년 하버드대 최고경영자(AMP)과정을 공부하러 갔죠. 장래가 촉망되는 하버드대 학생들 사이에서 증권사와 투자은행이 인기더군요. 마침 귀국 후 한신증권이 매물로 나왔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죠. 아무 준비도 없이 인수해 10년 가까이 무척 고생했어요. 우리(동원산업)랑 전혀 생리가 다르더군요. 직원 봉급도 많고 전혀 다른 세계였죠.

―증권업계 최초로 인센티브 제도와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도입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양어선에서 선원들이 그물을 당겨도, 안 당겨도 똑같이 1만원을 줬어요. 그런데 참치를 많이 잡았을 때 더 나눠주니까 정말 열심히 하더군요. 그래서 증권업에도 적용했죠. 어떤 업종이든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가장 뼈아팠던 실패 경험은 무엇이고 그 원인을 어디서 찾는지요.

▷통신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해피텔레콤(무선호출 사업)은 결국 성공 못했어요. 결국 사업의 핵심은 사람인데 그 분야의 우수한 사람을 확보하지 못했고 정보가 어두웠던 게 패인이었어요.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잘나갈 때 안주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죠. 뭐든 잘나갈 때 다음 먹거리를 계속 찾아야 해요. 몽땅 실패하더라도 계속 가면서 더듬어봐야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1977년) 카메라를 만들어봤고 5년 전엔 굴러가면서 충전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에 도전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요.

―동원그룹의 미래 성장엔진은.

▷당분간 깡통, 유리병, 파우치, 필름, 알루미늄 등 포장재사업에 집중할 겁니다. 2014년 사모아 기업 탈로파시스템즈와 국내 회사 테크팩솔루션, 한진P&C를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베트남 기업 MVP와 TTP를 인수해 동원시스템즈가 업계 1위가 됐어요. 매출액은 지난해 1조2000억원을 넘었고 올해 수출 1억달러(약 1100억원)를 바라봐요. 2년 새 많이 컸지만, 세계 시장 규모는 950조원으로 어마어마해서 아직 성장잠재력이 많아요.

―지금 한국 해운업이 위기입니다. 1세대 경영인으로서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보시나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거였지만 그동안 시간만 낭비했죠.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예요. 구조조정을 안 할 수 없죠. 중국도 4개 해운사를 합쳐 세계 4위로 올라갔어요. 스위스 해운사 MSC 얼라이언스인 '2M'은 항구도 없는데 세계 2위에 올랐죠. 국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지만 해운은 국력이에요. 국가가 적극 나서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어렵지 않을까요.

▷절박해지면 새로운 싹이 납니다. 이제 어느 정도 야당도 책임져야 하니까 설득을 해야죠. 여야가 합쳐 방향을 잡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바다 위 뗏목도 한 데로 힘을 모아 끌어야 속도가 나서 제대로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여러 군데 힘을 분산시키면 물과 마찰만 커지죠.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힘을 실어줘야 해요. 소통에 문제는 있지만 사심 없이 자신을 다 바쳐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많지요. 중요한 것은 규제를 개혁하려는 의지예요.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 행정쇄신위원을 7년 했는데, 아래에서 주장해서 될 게 아니고 통치자가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해요.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흐름을 봐야죠. 한국무역협회장(1999~2006년)을 맡았을 때 지구본을 장관들에게 선물했어요. 세계를 보고 일하라고요. 세계가 한국을 축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각하는데 우리 땅은 엄지손가락 하나도 안 돼요. 인식을 바꾸려고 '거꾸로 지도'를 만들기도 했죠.

◆ 인재경영

그는 바다에서 인간의 밑바닥을 봤다. 선원 30여 명이 한 배에서 몇 달 같이 지내다보면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60년대 이미 원양어선에서 극단의 노사분규를 겪었다. 선장, 기관장, 항해사를 회사에 데려다가 2~3주간 회사 회계장부를 작성해보게 해 분란의 여지를 없앴다. 지금도 인성교육과 인재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다. 동원그룹 본사 사옥 꼭대기 20층에 구내식당을 만들어 직원들이 가장 좋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밥을 먹도록 배려했다.

―동원증권은 증권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인재를 많이 배출했죠. 회장님은 임직원을 롱런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업도 결국 사람 싸움이죠. 우수한 사람이 모이면 됩니다. 동원증권을 인수한 후 공채를 시작해 사람을 길렀어요. 1986년 상무로 스카우트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대표적이죠. 유상호 사장은 10년째 한국투자증권 대표를 맡고 있지요. 나는 사람을 쓰면 믿고, 못 믿으면 쓰지 말라고 하죠. 20~30년 같이 일한 임원들이 많아요.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인성이죠. 재주는 더 있고 덜 있기도 하지만 인성은 극과 극의 결과가 나와요. 양이 맑은 시냇물을 먹으면 풀이 되지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지요.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회장은 능력과 열정, 사고방식을 곱해 성과가 나타난다고 했죠. 마이너스 사고를 하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나 열정이 있어도 업적이 마이너스가 돼요. 능력과 열정은 높을수록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사고방식입니다.

―그래서 동원육영재단을 통해 '동원책꾸러기'라는 독서캠페인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 것이군요. 인생에서 문사철 600권(문학책 300권, 역사책 200권, 철학책 100권)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지요.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한 달에 10여 권을 봅니다. 서재와 침대, 거실에 두고 그때그때 막 읽지요.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첩보전을 담은 '그레이트 게임'(피터 홉커크 지음)이 기억에 남네요. 매일경제신문 등 일간지 6개도 매일 읽어요. 정보가 쌓이면 지식이 되고 아이디어가 생기죠.

◆ 정도경영

태풍을 만났을 때 피하려 하거나 우회하면 오히려 배가 뒤집힌다. 파도를 타면서 정면승부해야 한다. 김 회장은 바다에서 얻은 이 깨달음을 '정도경영'으로 실현시켰다. 1991년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53)에게 동원산업 주식 55만주를 증여하면서 증여세 62억3800만원을 국세청에 자진 신고했다.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정도경영은 뭡니까.

▷순리경영이죠. 이치에 맞는가, 안 맞는가 그게 앞으로 성장을 결정짓죠. 돈 벌겠다고 부정한 방법으로 속이면 안 돼요.

―한국 사람들은 기업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기업인들을 도매급으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 안타까워요. 열심히 일해서 기업을 일군 훌륭한 기업인들이 많습니다. 경영자는 걱정거리가 많고 자다가도 식은 땀이 줄줄 흘러요. 그래서 제 여식들은 사업을 안 시켰어요.

―최근 글로벌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한국 50대 부자에 올랐습니다. 후배 경영인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안 될 일이 없어요. 흙수저 등 비관적인 운명론이 팽배한데, 세계적인 부자도 금수저는 아니었어요. 옛날보다 기회는 오히려 많아요. 골프, 연기만 잘해도 큰 부자가 되는 세상이잖아요.

―원양어선 선원으로 시작해 9조원대 그룹을 일궜습니다. 그래도 꿈이 있나요.

▷자아실현 다음 단계는 인류와 국가 등 공동체에 대한 공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는 양보와 배려보다는 욕심만 난무하는 세상이 됐어요. 그래서 대학에 인성교육 과정 개설을 추진 중입니다. 사회 갈등비용을 줄이고 순화하는 방법이죠.

■ 76세때 골프75타 '에이지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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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오른쪽)과 김주영 본지 유통경제부장이 서울 양재천변을 거닐며 대담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이 밖에서 사업을 일구는 동안 가족의 희생이 불가피했다. 그의 자식 2남2녀는 아버지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유년시절 아프리카 서커스단 사자 옆에서 찍은 부친 사진을 보고 "와, 타잔이다"고 외쳤다고 한다.

김 회장은 "아이들을 품에 안아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엄격한 경영수업으로도 유명하다. 장남은 젊어서 배를 탔고 차남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43)은 공장에서 일했다. 영국 워릭대에서 유학 중인 장손이자 김남구 부회장의 아들 김동윤(23)을 창원 동원F&B 참치 공장에 보내 꼬박 한 달 동안 일을 시켰다. 현장을 알아야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경험을 안 해보면 몰라요. 자기 좋게만 생각하죠. 어려서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느껴야 해요. 숙소에서 (직원들과)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면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자주 합니다."

다행히 손자는 그런 할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린다. 평전을 집필하는 공병호 박사에게 '회장님께서 겸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시고 자신에게도 엄격하기 때문에 이루신 업적과 공헌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신다. 업적 자체보다는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오신 모습이 잘 전달될 수 있게 부탁한다'고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장손이 선물한 휴대폰 갤럭시 기어 스마트워치를 차고 다닌다. 심장박동 수를 체크하고 하루에 몇 보 이상 걸었는지 확인한다.

그는 "취미가 걷기와 골프밖에 없다"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아카데미에서 사진을 배워봤지만 소질이 없어 그만뒀다"고 했다.

그의 골프 실력은 수준급이다. 2009년 76세에 75타를 쳐서 '에이지 브레이커'(나이보다 적은 타수)를 기록했을 정도다.

건강 비결은 소식과 숙면. 밤 10시 30분에 잠들어 오전 6시 30분에 기상해 스트레칭을 한다. 그는 "밥은 한두 끼 굶어도 되지만 잠을 못 자면 금세 몸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 김 회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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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전남 강진군 출생 △1958년 부산수산대 어로학과 졸업 △1963년 동화선단 선장 △1969년 동원산업 설립 △1978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1979년~현재 동원육영재단 이사장 △1981년 미국 하버드대 최고경영자과정 △1982~1996년 동원증권 사장 △1989년~현재 동원그룹 회장 △1999~2006년 한국무역협회장 △2003~2004년 동원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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